시간이 있을 때 읽으려고 가져온 류시화의 산문집을 미국에 온지 두달이 지난 오늘에서야 펼쳐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전에 적어논 소설 어린왕자의 한 부분에 대한 메모가 책에서 빠져나와 떨어졌습니다.
"What does that mean.. 'tame'?"
'길들이다'의 뜻이 뭐야?
"It is an act too often neglected." said the fox.
"It means to establish ties."
"But if you tame me, then we shall need each other."
"To me, you will be unique in all the world."
"To you, I shall be unique in all the world."
그건 너무 자주 잊혀지는 거야. 여우가 대답했다.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해.
너가 나를 길들이면, 우린 서로를 필요하게 될거야.
너는 나에게 너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이 세상에 하나 뿐인 존재가 되는거야.
사람들이 가장 감동 깊게 읽은 책이 뭐냐고 물으면 삼국지나 위인전 이야기를 꺼내지만, 사실은 가슴 속 최고 중의 최고는 항상 어린왕자로 남아 있습니다. 학창시절 시험을 위해서가 아닌, 생각하기 위해 어린왕자를 읽어 보신 분들이라면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왕자에는 사람이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아주 중요한 교훈을 알려주고 있거든요. 그건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관계라는 것은 비단 사람 사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와 길들여진 개에 대한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마치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처럼 말이죠.
책상 속에 오래 묵은 편지를 꺼내 읽듯이, 어린왕자 책 속의 좋은 글귀들을 모아봤습니다. 글귀를 보면 볼수록 드라마틱하게 저와 그리고 저의 개와의 관계가 연상이 되었습니다.
진실은 이것이예요.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거예요.
나는 행동으로 판단을 내렸어야 했어요.
말이 아니라...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마치 태양이 내 인생에 비춰드는 것과 같을 거야.
나는 너만의 발자국 소리를 알게 되겠지.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는 구별되는...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숨어들게 만들겠지만,
너의 발자국은 마치 음악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나오게 할 거야.
세상에서 가장 여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 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여기 보이는 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가령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 부터 행복해질거야.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그 만큼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되면 이미 나는 불안해지고 안절부절 못하게 될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거야.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황금 빛 머리카락을 가진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거야.
그렇게 되면 황금빛 물결치는 밀밭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밀밭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도 사랑하게 될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야!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시간 때문이야.
하지만 너는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은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그러나 너는 이것을 잊어선 안 돼.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야.
네가 길들은 것에 대해서는.
나에게는 나의 장미꽃 한 송이가
수 백 개의 다른 장미꽃보다 훨씬 중요해.
내가 그 꽃에 물을 주었으니까.
내가 그 꽃에 유리 덮개를 씌워주었으니까.
내가 바람막이로 그 꽃을 지켜주었으니까.
내가 그 꽃을 위해 벌레들을 잡아주었으니까.
그녀가 불평하거나, 자랑할 때도 나는 들어주었으니까.
침묵할 때도 그녀를 나는 지켜봐 주었으니까.
길들이다...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가 되는거야
개와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마찰 중 태반이 일방적인 관계에서 기인합니다. 그건 '나는 이러이러하니 나와 지내려면 너도 이러이러해야 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일방적인 관계는 항상 부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관계라는 것은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과정입니다. 개가 사람에게만 길들여지길 바래서는 안 됩니다. 사람도 개에게 길들여져야 합니다. 털이 빠지고, 냄새가 나고, 짖기도 하고, 나가자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만져달라고 다가오는 개에게 길들여져야 합니다.
개들은 사랑을 주면 반드시 그 사랑을 돌려줍니다. 사람처럼 거짓을 말하지도 않고 배신을 하지도 않지요. 어린왕자의 글귀대로라면, 개는 기적입니다. 꽃 한 송이를 향한 어린왕자의 변함없는 사랑, 여우가 남겨준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책임감... 개와 함께 하며 서로 관계를 맺고 길들여지는 과정에 있어서 무엇보다 꼭 필요한 것들을 어린왕자를 통해 다시 한번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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