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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디어 이야기

로자 팍스(Rosa Parks)를 떠올리며...

로자 팍스(Rosa Parks)를 떠올리며...

 

다수가 소수에게 이끌려 가는 이유

- 소수는 어떻게 다수보다 강해지는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겠지만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따라서 나 아닌 타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의견이기 때문에 내 생각의 반대 방향으로 동조하는 경우도 있으며, 다수가 생각하는 바를 별 다른 고민 없이 받아들여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자주 일어납니다. 한 마디로 사회(즉, 나보다 더 많은 다수)는 나보다 강력한 존재이며 심지어 때론 내 행동과 생각에 나 자신보다도 더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듯 합니다. 저는 특히 애견 동호인들이 모이는 인터넷 문화에서 이런 경우를 흔히 접해 왔습니다. 옳든 그르든 다수의 의견이 몰리는 쪽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하이오주 신시네티라는 지역이 흑인 비율이 많아서인지 오늘 불현듯 로자 팍스(Rosa Parks)가 떠올랐습니다. 로자는 현재 제가 있는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불씨를 제공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입니다. 1955년 12월 1일,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시의 몽고메리 페어 백화점이란 곳에서 일하는 30대 초반의 여성인 로자 팍스는 지친 하루 일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 당시의 미국 버스들은 백인들과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타야 하는 좌석이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로자는 유색인종 좌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면서 그날 따라 버스에 오르는 승객은 대부분 백인이었고 급기야 백인 좌석이 모두 차고 몇 명의 백인들이 서있어야 하자 운전기사는 버스를 세웠습니다. 그런 다음 그 운전기사는 백인 칸과 유색인종 칸을 구분하는 표시를 로자를 포함한 네 명의 흑인들 뒤로 옮겨버렸습니다. 즉 로자가 버스를 탈 때는 유색인종 구역이었는데 운전기사가 백인들을 위해 백인자리로 바꿔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로자를 비롯한 그 네 사람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가라고 명령조로 말했습니다. 다른 세 사람의 흑인은 아무 말 없이 그 명령을 따랐지만 로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느냐는 운전기사의 핀잔에 로자는 “내가 왜 일어나야 하죠?”라고 저항했습니다. 실랑이 끝에 경찰에 체포되는 고생을 한 뒤 풀려난 로자는 인권과 평등의 개념에 대해 한 흑인교수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행동과 그 이유가 옳았음을 더욱 절실히 깨닫고 밤을 새워 3만장이 넘는 버스 보이콧 유인물을 만들어 도시 이곳 저곳에 배포하였습니다. 당연히 “우리들이 왜 차별 받아야 하는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행동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조롱하던 흑인들은 그녀의 ‘확신’과 ‘일관적 행동’에 그동안 별 다른 생각 없이 받았던 이러한 불평등한 차별에 자신들도 “도대체 왜?”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주제넘은 발상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대한민국의 반려견 문화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반려견의 능력과 건강보다는 지식이 얕은  일반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개를 뽑아내는 껍데기 번식문화, 팔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분양문화, 합리적인 가격과 질 좋은 용품보다는 사업체 운영에 목을 매는 동물 관련 용품 공급문화, 실상을 은폐하고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호객하는 교육문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료행위를 하는 수의문화 등 선진 반려동물 문화로 가는 발목을 잡고 있는 일들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도리어 그런 문화를 당연히 여기고 한술 더떠 지지하기까지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 집단, 다수의 힘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한 개인이 그 반대방향으로 지니는 힘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보다 더 힘이 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사회나 집단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나 압력을 따르지 않고 그 반대방향으로 나가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그 결과 중 하나이겠지만, 핵심은 소수가 상황에 따라선 다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수를 움직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인터넷 애견 동호인 카페를 봐도 이슈가 되는 게시물을 단순히 지켜보는 회원이 대다수입니다. 의견을 밝히지 않는 것 자체가 싫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어떤 대상이나 사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이나 견해 자체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애매함을 파고드는 소수의 구체적인 발전적 의견! 이로써 우리는 올바른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우리 주위에도 이러한 소수는 많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과거와 관련된 위안부 문제를 끈질기게 다루는 시민운동가들의 노력, 독도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수비대장의 일화, 중소기업과의 상생(相生)을 위해 단기적인 이익을 마다해 온 어느 기업인의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보여주는 일관성과 확신에 찬 행동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도대체 왜”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이는 다시금 자연스럽게 “그런데 나는 왜”라는 반추로 연결이 됩니다. 소수가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런 과정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로 “왜”라고 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과 대답하려는 노력들이 핵심인 것입니다.

 

별다른 생각 없는 내가 목소리 큰 구체적 의견에 따라가고 있는지, 아니면 확신에 찬 일관적 소수를 보면서 “나와 그 소수의 행동이 다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를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로서 이 애견 문화에도 발전적인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소수가 현실을 이끌고 있는 나태한 다수보다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상황과 기회가 더욱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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