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존재 이유? Cincinnati Zoo를 가다.
Cincinnati Zoo를 찾아가다.
Cincinnati에 살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은 장소가 동물원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정형화된 모습을 갖춘 동물원(1875년 설립)이라며 신시네티의 자랑처럼 여러 사람이 추천을 해 주었습니다. 위치를 찾아보니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5월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32도의 무더운 날에 동물원을 찾아갔습니다. 집에서 도보로 40여분 거리였는데, 동물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무거운 카메라를 얽매지고서 세 시간여 동안의 동물원 탐방은 더위와의 싸움이었습니다.
동물원을 찾은 이유는 동물만을 보고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동물을 관리하고 있는 방법에 있어서 무언가 국내와 차이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동물원 관리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서울 대공원을 종종 찾으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을 보며 아쉬울 때가 많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동물에게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돌을 던지기까지 하는 행동,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푯말을 무시하고 아이들을 시켜 과자를 주게 하는 부모들 등의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생태학적 동물원으로 거듭나겠다던 서울대공원의 거창한 계획은 현실화 되지 않은 듯 했습니다. 여전히 여러 동물들이 울타리 안에서 살만 쪄가고 있었고, 돌고래 쇼로 인한 동물단체와의 심각한 마찰 또한 시끌벅쩍한 이슈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점들을 생각할 때, 과연 미국의 동물원은 어떠할지 궁금했거든요.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네처럼 시끌벅쩍하지 않았습니다. 침착하게 동물들을 관람하고, 행여나 새끼가 있는 우리 밖에서는 조용조용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관람객이 붐비는 곳에서는 차근차근 순서를 지키며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새끼를 출산한 동물들을 소개하는 동물원측의 이벤트를 보면서 역시나 이곳도 상업적 성격과 번식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멸종위기종에 대한 안내는 짤막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다.
신시네티 동물원의 동물들 모습.
로랜드 고릴라, 화이트 라이온 등 진귀한 동물도 있지만...
한평도 안 되는 공간에 있는 멸종 위기종은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넓디 넓은 자연을 무대로 뛰어 다니던 녀석들이 그런 좁은 공간에 있다는게 참 서글퍼 보였습니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저에게는 그 서글픔이 더욱 강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World of Insect라는 세계 곤충을 모은 곳인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습니다. 곤충 번식에 있어서도 많은 성과를 낸 곳이 신시네티 동물원이라고도 하더군요.
신시네티 곤충관의 모습.
북적거리는 인파속에서도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지키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크로 렌즈가 없다는게 조금 아쉽더군요.
동물원의 기원
동물원의 기원은 현재 동물원의 목적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신석기시때부터 동물은 인간에 순화되었고, 많은 동물이 가축화 되면서 인류의 역사는 동물 사육의 역사라 해도 맞을 겁니다. 그렇지만 고대 중국의 은주왕이 신기한 동물을 모은 공간을 만들어 왕권을 자랑한 이야기나 중세시대부터 서양의 왕후귀족들이 다른 나라의 진기한 동물을 모아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은 것이 현대 동물원의 기원입니다. 근대 동물원의 효시라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빈에 설립된 쇤부른 동물원(1752년)도 프란츠 1세가 마리아 테레지아 왕비(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친)를 위해 세운 것이었다 하니 동물보호와 보존과는 거리가 먼 절대왕권의 위용를 자랑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영국 프랑스등의 유럽에서 곳곳에 근대 동물원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제국주의와 맞물려 더욱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또한 1864년 뉴욕의 센트럴동물원을 처음 개설되었고, 우리나라도 일제시대에 창경궁(당시 창경원)에 동물원이 개설되었다가 1984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전이 되었습니다.
동물원의 목적? 미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지만 그렇다고 동물들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있는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설립이 되었다는 동물원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 그 존재의 이유가 똑같은가? 섣부른 판단인지 모르지만, 동물원 기원을 목적으로 운영된다면 동물원은 언젠가 사라져야 하는게 맞을 겁니다. 현재 동물원의 목적은 계속해서 진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촛점이 너무 상업적인 것에 치우쳐 있는 듯 합니다. 진귀한 동물을 더 모을 수록 관람객이 늘어나기에 교육적 목적, 문화적 목적은 그 원래의 자리를 상업적 목적에 상당히 많이 빼앗긴 상태에 있습니다.
한 단체가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이윤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 이윤에 목을 매달게 되면 본래의 가치가 퇴색이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동물원이 없어지면, 우리 아이들이 먼 나라의 동물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느냐?'라며 동물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진귀한 동물을 보여준다고 해서 교육효과가 최고의 결과를 얻을까요? 동물을 보호하고 보전하는 모습이 결론적으로 지구를 생각한다는 것에 교육에 가치를 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의 편의대로 철장 안에 동물을 가둬두는 것은 교육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 이상 해답이 아닙니다.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개체는 본래의 터전으로 보내주도록 노력하고, 서식지가 파괴된 개체는 그와 유사한 공간을 만들어 주도록 힘쓰며, 다친 동물들을 돌보고, 야생동물 등의 생태연구를 함으로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려주는게 동물원의 존립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동물원이 단지 서커스처럼 눈요기를 제공하는 대상이 아닌, '동물을 위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장소. 동물원이 더 이상 오로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장소가 아닌, 오늘날 전인류가 짊어진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장소. 생명의 소중함과 아름다움, 자연보호와 환경보호의 중요성, 그를 위한 학습과 연구의 공간. 이 모든 것들이 인류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 줄 수 있는 장소. 앞으로 그런 목적으로 동물원이 거듭나기를 바래봅니다.